시사 사자성어삼국지

천산험로에 펼쳐진 만년설의 나라

입력시간 : 2018-11-05 12:05:48 , 최종수정 : 2018-11-05 14:56:51, 차정식 기자

천산험로에 펼쳐진 만년설의 나라

키르키즈스탄의 수도 비쉬켁에서 고선지장군의 전적지 탈라스주(州)까지 가려면 300km가 넘는 길을 가야 한다. 도로도 열악하고 3586m의 티아쇼 패스와 3330m의 엍트먹 패스라는 두 개의 고갯길을 넘다보니 6시간은 족히 걸린다.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인 허름한 택시로 천야만야(千耶萬耶)한 협곡을 꾸불꾸불 돌아서 오르다보면 택시는 가쁜 숨을 내쉰다. 초행길 그렇게 마음을 졸여 넘었건만 사람은 과정의 반복에 빨리 익숙해지는 것 같다. 천산 험로는 그대로이건만 이제는 티아쇼 고개가 무섭지 않다.

삼국지 권두시 한 구절이 생각난다.


 

청산 의구재(靑山 依舊在) 청산은 옛 그대로 이건만

기도 석양홍(幾度 夕陽紅) 세월은 많이도 흘렀구나

 

티아쇼 고개를 넘으면 풍경이 일변하고 대초원이 펼쳐지면서 풀을 뜯는 말떼와 유목민의 이동식 천막이 띄엄띄엄 모여 있다. 이름하여 수삼무르 대평원, 고선지 장군도 이곳을 지났다고 하는데 해발고도가 높아서 아무리 여름밤이라도 난방을 해야 한다.

천산산맥이 좌우로 둘러싼 새파란 하늘 아래에는 수삼무르 초원이 펼쳐지고 수시로 내리는 이슬비에 의지하여 유목을 한다. 시원한 공기에 초지도 풍성하고 짐승을 귀찮게 하는 파리조차 없으니 유목을 하기에 그야말로 최적의 환경이다.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은 아버지를 따라 키르키즈에 머물렀다. 그는 마치 이 수삼무르 풍광에 감명을 받은 듯 산중문답(山中問答)이란 시(詩)를 남겼다.

 

문여하사 서벽산(問余何事 棲碧山) 어찌하여 이런 산골에 사느냐 묻기에

소이부답 심자한(笑而不答 心自閑)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으나 내 마음은 한가롭네

도화유수 묘연거(桃花流水 杳然去) 복숭아 꽃잎은 물길을 따라 아득히 흘러가는 곳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 여기는 별천지 인간세상이 아니로다

 

고전은 글을 지은 당사자가 현존하지 않으니 해석이 자유롭다. 더구나 시는 더더욱 정해(正解)가 없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해석하고, 마치 이백의 시상(詩想)이 이러할지니 하고 감상(鑑賞)하며 이 시를 종종 읊는다. 이백이 살아온다 해도 나는 이 시상을 그에게 우길 참이다.


 

삼국지에는 진진(陳震)이 유비의 심부름으로 성도의 청성산 서쪽에 사는 이의(李意)라는 은자를 초빙하러 가는 모습이 보인다.

이의는 300여 세를 살아온 생사와 길흉을 안다는 당대의 신선이었다. 진진이 나무꾼에게 길을 물어 찾아간 청성산 골짜기도 마치 수삼무르와 같았을 것이다.

 

산곡심처(山谷深處) 산골짜기 깊은 곳

요망선장(遙望仙庄) 멀리 신선 사는 곳 보이는데

청운은은(靑雲隱隱) 높은 구름 은은하고

서기비범(瑞氣非凡) 상서로운 기운도 범상하지 않았다

 

수삼무르 초원을 1시간 더 달리다가 우회전하면 엍트먹으로 가는 길이다. 만년설이 쌓인 이 고개를 넘어야 탈라스 분지가 나온다.

비쉬켁에서 탈라스까지 가는 이 길도 어렵지만 천산 험로는 도처에 상상을 초월하는 곳이 많다. 송쿨 호수에서 수삼무르로 통하는 지름길은 산을 지나면 또 가파른 산이 나오고 골짜기를 지나면 또 까마득한 골짜기가 나타나는 그야말로 끝도 없는 협곡의 비포장도로를 12시간 내내 달려야 한다. 자동차 두 대가 비킬 수 없는 좁은 길 아래의 낭떠러지 밑바닥에는 만년설이 녹아서 모인 계곡물이 세차게 흐른다.


 

중국 사람이 이곳의 산과 만년설, 사람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는 비경을 외경(畏敬)하여 천산(天山)이라고 불러 지금의 텐샨(TIEN-SHAN)이 되었다. 현재 중국 국경은 천산의 정상은 넘지 못한 천산산맥의 동쪽 일부를 차지하고 파미르 고원 쪽은 타지키스탄, 파미르 고원의 서쪽 산맥은 우즈베키스탄 영역이다.

키르키즈스탄은 천산산맥에 둘러싸인 그야말로 산악국이고 만년설의 아름다운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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