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차정식
조용하던 초등학교 동창생 단톡에 여자 친구의 수필집이 실렸다.
경남 산문선 68/예자비(睿姿裨: 이미숙) 수필집 <춤추는 여자>
호라티우스는 “나이가 많은 사람은 그 어떤 것에도 놀라지 않는 경지에 들어선다”고 했으나 60대 중반의 나이답지 않게 매우 놀라고 말았다.
학생수가 많지 않은 시골학교여서 모두가 한 교실에서 공부를 했기에 저 친구를 알고 있다 생각했는데 뜻밖의 일을 만들어서다.
알만한 사람에게서 그럴만한 일이 생긴다면야 크게 놀랄 일이 아니지만 평소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다 갑자기 선두로 치고 나오는 다크호스처럼 이제서야 시야에 들어온 친구의 재능을 보고 내가 그동안 알고 자신했던 것들의 허상이 무너졌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상대방이 발전한다는 것을 경계했다.
사별삼일(士別三日) 선비가 헤어졌다가 사흘이 지나 만나면
괄목상대(刮目相對) 눈을 비비고 상대를 보아야한다
바로 삼국지 인물, 동오의 여몽(呂蒙)에 대한 고사성어인데 그는 장수가 되었으나 일자무식이었다.
주공 손권이 글을 배우라고 하자 충격을 받은 여몽은 늦은 나이에도 글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몽의 군영을 방문한 제갈근이 평소 무식하다고 여겼던 그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유식한 말이 나오자 깜짝 놀랐다. 여몽은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제갈근에게 사별삼일(士別三日)이면 괄목상대(刮目相對)해야 한다는 말까지도 했다.
이처럼 여몽은 조용히 실력을 키우며 평소 자신을 드러내지 않다가 노숙에 이어 동오의 대도독이 되어 군권을 잡았다. 얼마 후, 그 대단하고 자부심이 강한 관우가 북으로 진군하면서 배후에서 틈을 노리는 여몽의 움직임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그만큼 평소 주목을 받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소홀히 방비했던 것인데 여몽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순식간에 형주를 점령한 뒤 맥성으로 달아난 관우를 궁지에 몰아넣어 사로잡았다.
관우는 참수를 당할 때까지 간교한 계책에 빠져 패배했다고 매우 억울해하며 그동안 꾸준히 실력을 키워온 여몽의 노력과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는데, 우리 또한 관우처럼 선입견으로 주변 사람들을 대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아주 오래 전에 이문구의 ‘유자소전’이란 책을 읽었다.
유씨 성을 가진 작가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그의 친구는 그다지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으나 군에서 제대를 한 후 운전 실력 하나만으로 발군의 능력을 인정받아 큰 기업에 입사를 했다. 중년의 나이임에도 어릴 때 가졌던 성품으로 대범하게 살아가는 친구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에는 기대와 또 아련한 추억마저 간직하고 있었다.
이처럼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주위에는 유씨 같은 친구가 많다.
농장에서 깨와 고추 등 자신이 가꾼 농작물이 커가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며 보람을 찾는 친구, 젊어서부터 꾸준히 목각한 조각품을 모아놓고 감상하는 친구, 틈틈이 그림을 그려 전시회를 여는 친구, 도서관을 찾아 평소 못한 독서를 하는 친구, 목표한 산을 오르며 등반에 열중인 친구 등 다양한 일을 경험하면서 일상을 조화롭게 또 나이에 걸맞게 받아들이는 친구들의 대견한 모습이 참으로 그립다.
비록 늦었으나마 이번에 수필집을 낸 친구는 나이에 따른 원숙함과 풍부한 경험으로 형성된 감수성을 잃지 않고 자신을 고찰한 행복한 사람이다.
혹자는 그 흔한 수필이라 하겠으나 저 격변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체득한 판단력으로 사물을 꿰뚫어보고 그 근저를 서정적인 언어로 규명했으며 오래 전부터 수집한 자료를 모으고 정리하여 마침내 우리의 가슴에 와 닿는 맞춤형 감동을 선사했으니 이것은 그 어떠한 대가의 작품보다도 값지다.
친구들의 마음에 조용한 감동과 용기를 준 예자비(睿姿裨)에게 여기 먼 중앙아시아의 텐샨(天山)에 올라 박수를 보낸다. 우산(牛山)에서도 들리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