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 59박60일의 전국일주 무전여행’ 출간

안명영·최진철·김동환 공저…44년 전 경험 책으로 펴내

도내 초·중·고·도서관 등에 1,200권 기부…안내서 역할 기대

입력시간 : 2019-01-23 10:49:05 , 최종수정 : 2019-01-23 10:58:09, ipecnews 기자

 

“44년 전 대학 1학년 때 2개월간 전국을 무전여행 한 경험은 냉엄한 실제 세상을 살아가는데 큰 경험이 되었다. 우리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된다면 꼭 무전여행을 권하고 싶다.”

전·현직 교장 3명이 1974년 12월 20일부터 2개월간 무전여행을 경험으로 한 책을 출판해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저자들은 2018년 마지막 탈고를 앞두고 44년 전에 갔던 길을 다시 찾아나서 10대의 아가씨가 할머니로 된 분과 그 외 많은 사람들과 재회하는 의미 있는 제2의 추억여행도 다녀왔다.

화제의 책은 ‘젊은 날, 59박 60일의 전국일주 무전여행(이하 무전여행)’이다. 책을 낸 주인공은 안명영(66) 전 진주 명신고 교장, 최진철(66) 전 하동 옥종고 교장, 그리고 2월말 퇴직하는 김동환(65) 경남과학교육원 원장이다.

이들은 모두 진주고등학교 동문이면서 경상대학교 사범대를 졸업하고 교직에 몸을 담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의 총 여정은 약 2,109㎞로 약 5,500리에 달한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여행수단은 경운기와 소달구지였으며 열차, 버스, 트럭, 군용차, 삼륜차, 심지어 여객선도 이용했다.

2개월간 이들의 잠자리는 학교 숙직실, 새마을회관, 마을이장 집, 개인집, 친척집, 소개 받은 집, 여인숙, 여관, 역 대합실, 근로자 합숙소, 독서실 등 다양했다.

무전여행은 제1장 ‘진주를 떠나 전라도로 향하다’에서 기차로 진주를 출발해 하동 섬진강~순천~전남 보성·벌교~전남 장흥~강진~영암~나주~광주~담양~순창~남원~전주~군산 등 전라도로 향하는 여행의 설레임과 그 곳에서 겪은 에피소드를 다뤘다.

당시 상황을 세세하게 적은 글들이 4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읽으면서 새로운 감명을 불러일으키고, 대학생들의 순수한 마음과 얼굴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음식을 내주고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 당시 넉넉했던 인심들이 흠뻑 묻어난다.

제2장은 ‘찬란한 백제문화를 탐색하다’라는 주제로 장항제련소·풍농 비료농장을 둘러보고 서천~논산~대전~계룡산 동학사·갑사~공주박물관~청주 중앙공원~천안 여정을 소개한다.

당시 무전여행에서 가장 많이 사용했던 기차로 이동할 때 차비 없이 타다가 잡힌 일화와 일반 가정집에서 저녁을 얻어먹고, 천안역 벤치에서 자면서 밥을 대접 못해 사먹으라고 준 비상금 200원으로 소주 한 병과 뽀빠이 5개로 저녁끼니를 해결하는 초라한 마음을 위로하기도 한다.

제3장 ‘경기도와 인천으로 향하다’에서는 오산~수원화성~안동 김씨 묫자리, 수인선을 타다 배가 고파 쌀을 파는 아주머니에게 어렵게 쌀을 얻는 에피소드가 묘사되어 있고 친구들과 지인에게 보내는 편지가 재미를 더한다.

제4장은 서울 명동거리~산업지대 구로공단~동작동 국립묘지~장충단공원·남산공원을 둘러보고 김포공항에서 재떨이에 버린 긴 담배꽁초 ‘장초’를 모으는 내용들을 재미있게 묘사했다.

제5장은 ‘역사의 아픔과 흔적의 땅, 강화도’ 이야기를 제6장은 ‘강원도로 발길을 옮기다’에서는 춘천으로 가는 기차에서 무임승차했다가 시간을 잘 몰라 기차를 놓친 사연과 생고구마로 끼니를 해결하는 눈물겨운 사연들이 다소곳이 들어있다. 소양강댐과 원통, 속초, 양양 낙산사, 강릉 경포대 이야기도 담겨 있다.

제7장은 ‘경상북도로 이동한다’로 영주역 대합실에서 구정을 앞두고 승객들에게 술과 사과를 얻어먹는 장면과 영주~안동간 열차에서 낮잠을 자다 검표원에게 들켜 쫓겨나는 장면들도 나온다.

세 명의 원정대원들은 포항을 떠나 부산에 도착해 용두산 공원과 부산역을 둘러보며 진주로 향하는 순천행 열차에 무임승차했지만 차장에게 잡히고 만다.
승무원은 그들에게 “먹고 자고 차타는 것은 공짜로 해왔군, 요령만 배웠군. 세상은 만만하지 않아. 공짜가 통한다고 생각하면 잘못이야. 사회에 대한 빚이라 반드시 갚아야 되는 거야.”라고 타이른다.

1975년 2월 17일 저녁 8시 진주역 역전식당에 3명이 모여 앉았다.
“아줌마요, 여기 막걸리 세 되 빨리 주이소.”

세 명이 60일간의 무전여행을 마치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왔지만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무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A의 누나는 시집가서 집에 없었다. B는 진주의 형님 집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여행에서 돌아오니 이사를 가고 없었다. C는 해질 무렵 농촌에 있는 집을 찾아가니 온 식구가 마당에 나와 맞이하면서 울음바다가 되었다. 그의 할머니는 장손이 걱정이 되어 새해에 점쾌로 생사를 물어봤다고 한다.

두 달 간의 무전여행을 마친 이들은 44년 후 길고 긴 추억을 찾아 나섰다.
진주역 역전식당 할머니를 만났고, 중양리 이장의 아들을 찾았고, 덕산부락 마을회관에서 밥을 해주었던 아주머니가 할머니가 된 천전리 이장 가족도, 편지를 주고받던 여인도 함께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Q. 무전여행을 하게 된 계기는?
A. 김동환 원장이 중학교 1학년 때 체육교사가 1주일 다녀온 무전여행에 감동받아서 꼭 가야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이후 무전여행에 대한 정보를 수집, 구상하고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D-day를 정했다.
대원은 중학교나 고교 동문이면서 대학동기 가운데 선발했고, 출발 전 공동으로 계획을 세우고 교수님의 도움을 받는 등 반반의 준비를 갖췄다.

Q. 밥은 어떻게 해결했는가?
A. 처음에 밥을 얻어먹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밥 좀 주이소”라는 말을 했다. 서로 말을 못해 남의 등을 떠밀었다. 당초 자신이 없어 쌀 한 되와 코펠을 준비했다. 하지만 전라도의 인심 좋은 농촌 마을에서 무전여행을 시작해 끼니를 해결하고 우리는 용기를 얻었다.
수십 차례 밥을 얻어먹는 사이에 최대한 배고픈 표정과 동작까지 갖춰지면서 쉽게 해결했다.
특히 시골의 회갑잔치와 결혼식, 장례식에서는 우리가 회식하는 날이다. 또 시골 이장님 댁이나 대학생이 있는 집에서 하룻밤을 자면 아침밥은 자연스럽게 대접을 받기도 했다.

Q. 잠자리는 어떻게 해결했나?
A. 시골의 새마을회관을 가장 많이 활용했다. 경로당을 겸하고 있어 난방도 잘 되어 있었다. 도시에서는 노동자 합숙소나 역대합실, 파출소 도움을 받아 여인숙, 학교 숙직실 등을 활용했다.
교수님의 친척집이나 멤버의 친척집에서 잠자리를 해결했다.

Q. 빨래나 세수는 어떻게?
A. 외투는 두 달간 바꿔 입지 않고 빨래도 하지 않았다. 여행이 끝난 후 집에 도착했을 때 부모님들은 외투를 보고 기겁을 했다.(웃음) 바지와 내의, 속옷은 1주일에 한 번씩 갈아입은 것 같다.
그러나 양말은 냄새 때문에 거의 매일 씻고 갈아 신었다.
세수도 거의 하지 않았다. 걷다 만나는 강물에서 고양이 세수를 했다. 목욕은 한 번도 못했던 것 같다. 이발도 하지 않아 장발 중에 장발이었다.

Q. 무전여행을 권해본 적이 있는가?
A.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 겨울방학을 앞두고 여유 있는 시간에 무전여행 강의를 했다. 많은 학생들이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담임교사 한 분이 무전여행을 하면 안된다고 하는 바람에 실행에 옮기지는 못한 것 같다.
동생에게 대학에 다니는 조카에게 무전여행을 권유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동생은 “무슨 소리하느냐?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며 어림도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44년이 지난 지금은 무전여행 하는 조건이 훨씬 좋아진 것 같다. 똑 같이 상황을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더 안전하고 숙식문제도 잘 해결 될 것 같다.

Q. 무전여행이 인생에 기여한 점은?
A. 무전여행의 경험은 실제 세상을 사는데 많은 힘이 되었던 것 같다. 60일간 하루 세끼의 밥, 잠자리, 차량 이동 등 매일 불가능해 보였지만 모두 해결했다.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하고자 한다면 언젠가는 해결된다.’는 믿음을 얻었던 것 같다.
지금도 아무리 힘들고 불가능하다고 느껴지는 일도 꼭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무전여행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경험인 것 같다.
3명의 대원은 공통적으로 성취한 경력이 있다. 첫째, 경남교육청 장학사로 근무했으며, 둘째 고등학교 교장으로 근무했고, 셋째 모두 부부교사였으며, 넷째, 두 명의 자녀들을 나름대로 잘 키웠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무전여행 경험에서 얻은 모든 것들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


안명영 전 교장은 하동군 옥종면 출신으로 옥종초·옥종중·진주고·경상대학교 과학교육학과를 졸업했다. ROTC 군복무를 마친 후 서상상고에서 첫 교직에 발을 내딛었으며 경남과학고, 함양고 교사를 거쳐 연구사, 경남교육청 장학관, 하동고 교장을 역임하고 진주 명신고 교장으로 퇴직했다.

최진철 전 교장은 사천시 정동면 출신으로 진주에서 초중고를 나오고 경상대학교 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ROTC 복무를 마친 후 합천 삼가중학교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진주고, 명신고, 경남과학고 교사를 거쳐 경남교육청 장학사, 진양고 공모교장, 옥종고 교장으로 40여년의 교직생활을 마감했다.

김동환 원장은 산청군 생비량면에서 태어나 생비량초·진주중·진주고·경상대(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고시공부를 하다가 법학박사를 마친 후 창원대 강단에 서기도 했다. 창원과학고 개교 교장, 경남교육청 과학직업과장, 명지여고 교장 등을 거쳐 오는 2월말 경남과학교육원장을 끝으로 40년 6개월의 교사생활 마무리를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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