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이란?

사전적 정의

우리 주변과 내면의 상태를 알게해 주는것

본질에 대해서는 아직도 오리무중

입력시간 : 2019-04-11 07:54:59 , 최종수정 : 2019-04-15 00:48:37, 김태봉 기자

의식의 세계

 

사전적 정의.

우리가 우리 주변의 것과 내면의 상태를 알 수 있게 해주는 것.

의식에 대한 여러 의견들은 아직 그 본질의 주변만 빙빙 돌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무엇이 의식인지 직관적으로는 다 안다.

이거, 지금 경험하고 있는 거. 하지만 정확히 무엇인지 콕 찍어보려고 한다면, 그저 뜬구름 잡는 느낌만 든다.

철학자, 과학자들도 의식을 정의하는데 애를 먹는다.

 

다양한 학설과 아이디어들이 나와있지만, 그 누구도 확실히 알아내지 못했다. 우리가 우리와 세계를 알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 애매한 영역에서 의식과 지성은 관련은 있지만 같은 것은 아니다.

 

사람을 만드는 다른 많은 것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의식 또한 자연선택에 따른 진화의 산물로서 보다 단순한 것에서 진화했을 가능성이 있다.

의식은 아마도 함께 '의식의 경사'를 이루는 수억 년의 수많은 작은 단계들에서 생겨났을 것이다.

 

무의식에서 기본 의식에 이르는 이길에서 첫 번째 단계는 무엇일까?

궁극적으로 오늘날 우리 인간이 즐기는 난해한 의식으로 이어진 것은 무엇일까?

돌을 예로 들어보자. 돌에는 의식이 없다는 것이 정론이다.

어떤 심령술사들은 돌덩어리 안에도 생명이 깃들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다.

돌은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다. 그 생명의 존재는 증명될 수도, 반증될 수도 없다. 흔히 시작하는 지점은 생명체부터다.

 

생명체란, 스스로를 유지하며 번식시키는 세상의 일부분이다.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여기서부터 세상에 대한 인식이 에너지원(음식)을 찾게 하는 것이었을거다. 의식의 원래 기능은 아마도 움직일 수 있는 자신의 에너지가 부족해지면 에너지원을 찾게 하는 것이었을거다.

 

조금 더 작은 규모에서라면, 음식을 찾기 위해서 꼭 의식해야 하는 건 아니다. 가장 단순한 형태의 동물중 하나인 털납작벌레의 경우, 아무렇게나 돌아다닌다. 먹을 게 있다면 느려지고, 없다면 빨라진다.

이는 음식이 없는 곳보다 있는 곳에서 더 오래 머무르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특정한 대상을 향해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지는 않아서, 주위 환경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

 

의식을 향한 첫 주요 단계는 아마도 움직일 수 있는 생명체가 자신을 특정 방향으로 움직일 때 생겼을것이다.

먹이와 같이 유익한 것에 다가가고 덜 유익한 것으로 부터 멀어지는 거다.

이를테면 포식자, 플라나리아를 예로 들어보자.

웃기게 생긴 얼굴로 유명한 작은 벌레다. 이 벌레는 배고플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이는 벌레가 움직일 때 단순히 외부 자극에 대한 자동적인 반응을 하는 건 아님을 뜻한다.

 

그들의 행동이 내부의 생리적 상태에 따른 것임을 뜻한다.

배가 고프거나, 배가 부르거나. 막 먹은 뒤에는 덜 활발하지만,한동안 굶은 뒤에는 맛있는 것을 찾아 움직인다.

머리에 있는 화학 수용체를 활용해 주위 환경의 냄새를 맡고, 음식 냄새가 가장 센 쪽으로 움직인다.

음식을 찾아 식사를 마친 뒤, 맹목적으로 후각을 따르는 생명체는 안전하게 다시 배고파질 때까지 식사를 소화한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보이는 목표를 갖진 않는다.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감각이 떨어진다. 의식의 다음 단계는 주변에 대한 인식을 더하는 것이다. 시각처럼.

시각은 세상에 대한 맥락과 깊이를 제공하며, 또한 우리와 우리의 음식이 있는 공간에 대한 인식을 제공한다. 이는 인식의 완전히 새로운 차원이며 우리가 아는 의식에 한 발짝 다가간 것이다.

 

눈과같은 광학 장치는 우리가 목표물을 시각화하고 여기에 집중하게 한다.

하지만 이 단계에서도, 생명체는 눈에 보이는 식량만 인지할 뿐이다. 그러니, 다음 논리적 단계는 생명체의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

식량이 없어져도 식량의 시각정보를 만들기 위하여 생명체는 이 세상의 투영을 스스로 만들어 내어야한다. 그러면, 그 생명체는 음식이 시야에서 사라져도 음식을 계속 찾아볼 것이다.

 

세상의 투영과 필요한 것의 관련성을 깨닫게 되면 생명체는 음식에 집중할 것이고, 얻기 위한 욕망을 지닐 것이다.

기억능력이 생성된 것이다. 기억 덕분에, 동물은 수 초 동안 외부 자극에 대처한 후에도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다.

관련된 의식으로써는, '객체의 영속성'이 있다. 이는 목표하는 물체를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그곳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몇몇 포유류와 조류가 가지고 있고, 그외 동물도 가지고 있을거라 추측된다. 인간 아기는 이 능력을 태어나고 몇 개월에 걸쳐 획득한다.

병아리는 태어난 후 이틀 안에 획득하지만.

객체의 부재(사라짐)에서 객체를 기억할 수 있는 용량은 시간이라는 개념의 기본을 제공한다.

시간의 개념은 의식이라는 긴 사다리에 있어 큰 도약이다.

이것이 현재의 시점에서 더 멀리 볼 수 있게 해주고,미래를 예상하게 해 주는 걸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어른 닭들은 잠시 참는 것으로 더 큰 식사를 받을 것으로 예상한다면 자기 앞에 있는 밥에 저항할 수 있다.

이런 종류의 지연된 만족은 오직 미래에 존재하는 보상을 시각화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성인 인간에게도 꽤 어려운 일이 될 수 있다.

웨스턴 스크럽제이(덤불어치)는 지연된 만족에 대한 전문가들이다.

그들은 나중에 그것을 회수하기 위해 저장고에 음식을 숨겼을 때 훨씬 더 정교한 미래 감각을 보여준다. 스크럽제이(덤불어치)는 만약 잠재적인 도둑이

보고 있었다는것을 알게 된다면, 그 음식을 다시 숨길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세상을 다른 시각으로 인식하고, 다른 배고픈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교활한 스크럽제이(덤불어치)는 다른 동료 새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이러한 독해 능력은 복잡한 의식수준에 매우 중요하다. 자신을 다른 사람의 입장에 놓음으로써 부유한 경쟁자를 능가할 수도 있고, 배고픈 친구와 공감할 수도 있다.

언어는 마음을 읽고 새로운 없는 것을 표현한다. 단어들은 우리가 세계에 대한 가설을 세우고, 상세한 계획을 세우며 다른 사람들과 그것들을 의사소통할 수 있게 해준다.

 

단어는 우리가 우주에서 자신과 우리의 위치에 대해 생각할 수있게 한다. 그리고 심지어 우리 자신의 의식에 대해서도 말이다.

우리의 의식의 기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배고픈 자아가 음식 공급원으로 향하도록 지시된 움직임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생존 혜택 덕분에 무작위로 이동했거나 전혀 움직이지 않은 경쟁자보다 우위에 있었다. 아마도 모든 것은 더 많은 음식을 원하는 충동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우주에 대한 꿈을 꾸거나, 고층빌딩을 짓거나, 소설에 집착할 수 있게 하는 세련된 의식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다음 식사를 어디서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것을 멈출 수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종합적으로, 우리는 음식을 얻기 위해 너무 많은 생각과 기발한 방법을 사용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의식적인 노력 없이 우리의 음식을 우리에게 가져다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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