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락원 개방과 가치에 관한 이견

성락원의 유래와 문화재적 가치

도성 밖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정원

문화재적 가치에 관해 논란

입력시간 : 2019-05-13 19:25:03 , 최종수정 : 2019-05-17 09:14:12, 김태봉 기자


성락원의 유래와 문화재적 가치 재고의견

 

서울시 성북구 선잠로247에 위치한 면적 14,407의 조선 후기 전통정원이다. 19921223일 사적 제378호로 지정된 후 200818일 명승 제35호로 다시 등록됐다. 서울 시내에 유일하게 남은 조선 후기 전통정원으로, 조선시대 선비들이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기던 곳이다. 전남 담양 소쇄원, 완도 보길도 부용동과 함께 한국 3대 전통정원으로 꼽힌다.

 

성락원은 1790년대 조성되어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심상응이 별장으로 쓰던 곳이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18771955)이 넘겨받아 35년간 별궁으로 사용했으며, 당시 독립운동의 본거지로 쓰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해방 후 심상응의 5대손인 고 심상준 제남기업 회장이 1950년 매입해 '도성 밖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정원'이라는 뜻으로 성락원(城樂園)이라 이름 붙였다. 1991년 심 회장이 작고한 후에는 며느리인 정미숙 씨가 관장으로 있는 한국가구박물관이 관리해 왔으며, 2008년부터 문화재청 주도로 복원 공사가 시작됐다.

 

성락원 개방과 함께 언론에서 앞다투어 다루어지고 있는 성락원의 문화재적 가치에 대해서 부정적 의견이 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성락원의 역사는 거의 거짓에 가깝다. 경내에 있는 바위글자 등의 구체적인 역사성 규명은 좀더 자세히 지켜봐야겠지만, 그것을 차치하더라도 성락원은 1961년 이전에는 지금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명백하며, 의친왕 혹은 이건과 연관이 있던 경내 건축물 역시 자취를 감춘 지 오래이니 이 곳의 문화재적 가치는 거의 전무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이번의 "전격 공개" 역시 해방 후 원 소유주인 심상준 이래 누적되어온 부채를 탕감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으며, 한편으로 지금껏 수많은 언론은 물론이거니와 국가 기관인 문화재청, 그리고 그 상급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등이 이에 대해 아무런 정밀 조사나 고증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통렬히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하겠다.

 

필자 석지훈은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한국 근대사로 석사를 받았다. 현재 미국 미시간대학교 (University of Michigan) 아시아문화언어학부 한국학과정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다. 근대 이후 한국의 전통문화와 문화유산 인식의 변모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20세기에 사진, 영상, 음향 매체가 한국의 전통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지를 중점으로 연구하고 있다

석지훈 idea0853@naver.com

 

그런데 여기에 다시 재반론을 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뉴스탑에 보도된 성락원 관련 뉴스에 대한 문화재적 가치에 의문을 제기하는 점에 대해서 건축 설계를 현업으로 하는 건축사 최성호 씨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어쨌든 문화재청도 사적으로의 가치보다는 경관적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여 기사에 나온 것처럼 1992년 사적 제378호로 지정됐던 것을 명승 항목이 신설되면서 2008년 명승 제35호로 변경됐다. 늦게나마 자기들의 오류를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명승은 경관이 좋아 보전할 가치가 있는 곳을 지정하는 것이다. 현재 명승은 명승 제 1호인 명주 청학동 소금강에서 명승 제115호 강진 백운동원림까지 115곳이 지정됐다. 그 곳 대부분이 좋은 경관을 가진 곳이다. 그러므로 이곳을 명승으로 지정했다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이강이 별서로 꾸미기 이전의 기록과 흔적들을 검증하는 것이 남아 있지만, 최소한 조선후기 개인 원림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정해 보전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추신: 나는 기사에서 나온 “‘전격 공개가 소유주의 부채를 탕감하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다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다. 복원 문제는 이미 2008년 이전부터 검토된 내용이다. 20083명승 제35호 성락원 종합정비계획 수립용역이 발주되어 그해 말 보고서가 나왔다. 그리고 개방에 대한 것은 최소한 3년 전인 2016년부터 논의됐다는 것이 확인된다. 아래 링크한 출장보고서에서도 나왔지만 소유관계가 있어 동의 문제 등으로 늦어진 것으로 2016년 이전부터 개방을 고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최성호(블로그)씨는 건축설계를 현업으로 하고 있는 건축사다. 한국문화에 관심이 있어 오랫동안 우리 전통건축과 한국문화에 대해 공부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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