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인 김병로 전 대법원장

한국으로 건너와 초대 대법원장 역임

김병로가 지킨 가지관 법관은 정의의 변호사

법관은 국민으로부터 의심 받으면 최대의 손상

입력시간 : 2019-06-11 18:48:18 , 최종수정 : 2019-06-14 16:10:39, 김태봉 기자

가인 김병로 전 대법원장


한국으로 건너와 초대 대법원장을 역임.

김병로가 지킨 가치관

공직자의 청렴성 일화


1950년대 어느 날 박봉을 참다못한 한 판사가 대법원장실로 찾아왔다.

급여가 너무 적어요.” 하자 나도 죽을 먹으며 버티고 있네.”

너무 추워요...잉크병이 다 얼어버렸다니까!”

추위에 벌벌 떨었던 판사들. 그러나 영하 5도가 되기 전까지 난방은 어림없는 소리였다.

다른 관청은 다 외제를 쓰는 데 우리만 나쁜 국산을 쓰니... 세상에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그럴 때마다 날아드는 호통 나라를 찾은 지 얼마나 됐다고! 국록을 먹는 우리가 아니면 우리 산업은 누가 키웁니까!“

 

정부에서 내려온 예산까지 돌려보내며 법관들의 허리띠를 졸라맨 이유

공직자에겐 청렴이 우선이다.“ 그런 그가 평생 지독하게 대했던 또 한 사람.

대통령이었다.

1949년 친일파 처벌에 소극적이었던 대통령과 달리 반민족행위자의 신속한 처벌을 주장한 대법원장

 

1954년 독재를 연장하기 위해 대통령 사사오입개헌 단행.

그러자 절차를 밟아 개정된 법률이라도 그 내용이 헌법 정신에 위배되면 국민은 입법부의 반성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며 공개 비판.

눈엣가시 같은 대법원장에게 사표를 요구하는 대통령에 대법원장의 응수

이의 있으면 항소하시오.“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街人 김병로.(18871964)

독립운동가들을 무료 변론했던 시절부터 대법원장으로 지낸 93개월 동안 그가 지키고자 했던 한 가지

국가의 독립

사법부의 독립

민주주의 실현

법관이 국민으로부터 의심을 받게된다면 최대의 명예손상이 될 것이다.“

정의를 위해 굶어 죽는 것이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수만 배 명예롭다.

법관은 최후까지 오직 정의의 변호사가 되어야 한다.”

-195712월 퇴임사 중에서.-

 

김병로는 일제 강점기 일본으로 건너가 법을 공부하고 독립운동가를 위해 무료 번호를 했다.

6.25전쟁으로 경제는 파탄이 나고 전기도 제한되는 시절 공부와 과로가 겹쳐 골수암으로 다리를 잃게 되는 고통속에서도 그가 한 말 국가의 기본은 국민이요, 정치의 대상은 국민의 복리에 있다.”

-김병로 자서전 중-

 

19541129일 사사오입 개헌.

초대 대통령은 중임제한 철폐. 이에대해 사법부의 독립을 주장하며 이를 반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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