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인간은 흔히 정의를 입에 올리지만, 그것은 종종 자신의 우월감에서 비롯된 착각일 뿐이다.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뿐이며, 그마저도 인류 내부의 시선에 한정된 정의일 때가 많다. 그것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이며, 자기가 옳다고 믿는 틀 안에서만 유효하다.
문제는 이 정의가 성공이라는 이름의 첫 승리를 발판 삼아 정당화되기 시작할 때 벌어진다. 한 번의 도전에서 성과를 이룬 개인이나 집단은, 그 성취를 지속 가능한 질서가 아닌 현재의 높이로만 측정하려는 오류에 빠진다. 미래의 방향보다는 지금의 위치에 도취되는 것이다.
이 흐름은 곧 지도층의 타락으로 이어진다. 권력자는 자기를 채우는 데 익숙하지만, 그 마음의 그릇은 좁고 경직되어 있다.
더 채울 공간이 없다는 착각은 자신 밖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고, 결국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권력의 오만을 낳는다.
이때부터 문화는 얕아지고, 감각은 천박해진다. 깊은 통찰과 성찰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자극적 흥밋거리와 우월감의 비교뿐이다. 역사와 공동체는 망각되고, 개인의 성공과 지배가 ‘정의’로 둔갑한다. 화합보다는 구분 짓기, 나눔보다는 올라서기에 집착하는 사회가 된다.
결국 이것이 망국의 바늘구멍을 뚫는 시작이며, 오늘날 그 틈을 열고 있는 첫 주자가 바로 미국이다.
미국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과거 인류에서 사라진 수많은 제국들의 몰락과 기묘하게 겹쳐진다.
로마 제국은 팽창과 문명의 대의 아래 수많은 민족을 아우르려 했지만, 내부의 부패와 불평등, 통제력 상실로 무너졌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다양한 민족을 하나의 틀로 억누르려다 갈등과 분열로 자멸했고, 나치 독일은 ‘질서’와 ‘정의’의 이름으로 광기의 팽창을 시도하다 인류적 파국을 초래했다.
이들 제국과 명분은 다를지라도, 확장과 이상, 질서와 정의라는 이름 아래 축적된 인간의 욕망은 끝내 그 자신을 무너뜨렸다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미국 또한 지금, 문명의 중심이라는 착각 속에서 내부 균열을 방치한 채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그 오만한 질주는 더 이상 조율이 아닌 통제이고, 더 이상 설득이 아닌 배제다.
그 역사의 서막은 언제나 그렇듯, 보이지 않는 작은 균열에서 시작되었으며 지금 그 구멍은 점점 벌어지고 있다.
문제는 단지 미국의 쇠퇴가 아니다. 이제 국제적 갈등을 과연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가,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이 위태로운 흐름을 무엇으로 멈추고 되돌릴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전쟁과 경제, 기술과 이념이 서로를 압박하는 이 시대에 인류는 다시 묻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가 말하는 정의란 누구의 것이며, 우리가 지키려는 문명이란 무엇이며, 그리고 우리가 향해야 할 미래는 정말 지금 이 길 위에 존재하는가.
정의의 착각 → 성공의 도취 → 권력의 경직 → 문화의 얕음 → 역사적 망각
이 일련의 흐름이 바로 오늘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몰락의 로직’이다.
이 망국의 지름길은 마치 대망의 꿈을 실현하는 것처럼 위장되어 다가온다. 그러나 그 꿈은 미래를 밝히는 횃불이 아니라, 타오르며 공동체를 태우는 불꽃일 수도 있다.
그 불꽃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지키기 위해 무엇을 되묻고, 무엇을 향해 갈 것인가...
이헌숙 | 교육비평가 · 사회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