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안철수
학교는 아직도 AI 이전의 방식으로 AI 시대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다.
이제 이 질문을 피하기 어렵다.
학생에게 AI를 쓰지 말라고 할 것인가. AI를 사용하더라도 과제와 시험에서는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라고 요구할 것인가. 교사는 AI가 작성한 결과물을 학생의 것으로 간주할 것인가. 교육청은 또 하나의 ‘AI 교육 추진계획’을 만들고 연수를 늘리는 것으로 대응할 것인가.
이런 방식으로는 부족하다.
AI가 교육에 들어온 것이 아니다. 교육의 전제가 이미 바뀌었다.
행정안전부가 공공문서를 AI가 읽고 활용하기 쉬운 형태로 바꾸기 시작했다. 정부 행정에서조차 사람이 문서를 읽고 처리하는 방식에서 AI와 함께 정보를 생산하고 활용하는 방식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런데 학교는 여전히 학생에게 검색하고 요약하고 보고서를 작성하는 능력을 반복해서 요구한다.
AI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학생에게 시키면서 그것을 ‘학습’이라고 부르는 셈이다.
이제 교육감에게 묻고 싶다.
당신의 교육청은 AI 교육 예산을 얼마나 확보했는가가 아니라 교육과정과 평가를 얼마나 바꾸었는가.
교장에게도 묻고 싶다.
당신의 학교는 AI 활용수업을 몇 번 했는가가 아니라 AI 때문에 필요 없어진 과제가 무엇인지 찾아봤는가.
교사에게도 묻고 싶다.
학생이 제출한 보고서의 문장이 얼마나 매끄러운지를 보는가. 아니면 그 학생이 어떤 질문을 던졌고 AI의 답을 어떻게 검증했으며 자신의 생각을 어디에 넣었는지를 보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AI 교육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AI 시대의 핵심 능력은 프롬프트 작성법이 아니다. 판단력이다.
학생이 AI에게 질문하고 답을 얻었다고 하자. 그 답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자료를 비교해야 한다. 틀린 전제를 찾아야 한다. 자신의 경험과 충돌하는 지점을 발견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AI에게 다시 반박을 요구해야 한다.
이 과정이 교육이다. 그런데 학교 현장에서는 여전히 결과물이 평가의 중심에 놓여 있다.
문법적으로 완성된 보고서. 깔끔한 발표자료. 그럴듯한 탐구 결과. 잘 정리된 독후감.
AI에게 몇 초만 주면 만들어낼 수 있는 결과물을 학생의 능력이라고 평가한다면 평가체계 자체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제 과제부터 바꿔야 한다.
“기후변화의 원인을 조사하라.”
이런 과제는 AI에게 넘겨도 된다.
대신 이렇게 물어야 한다.
“AI에게 기후변화의 원인을 조사하게 하라. 그 답변에서 신뢰하기 어려운 주장 세 가지를 찾아 근거를 제시하라.”
차이는 크다. 첫 번째 과제는 AI의 생산 능력을 평가한다. 두 번째 과제는 학생의 판단 능력을 평가한다.
부산의 영재학생들이 AI와 바이브코딩을 활용해 해양 안전과 환경, 항만 물류 문제를 해결하는 앱을 만든 사례가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AI 기술을 배웠다는 사실이 아니다. 학생들이 부산의 문제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인천 학생들이 시애틀에서 로봇 코딩을 활용해 재외동포 학생들과 교류하고 보잉의 한인 과학자·엔지니어를 만나 항공우주 진로를 탐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술이 목적이 아니다.
문제를 발견하고 사람과 협력하며 기술을 활용해 해결책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교육감과 교장이 이제 결정해야 할 것도 바로 이것이다. AI 교육을 새로운 사업 하나로 추가할 것인가. 아니면 기존 교육의 상당 부분을 다시 설계할 것인가.
교육청이 해야 할 일은 AI 연수 숫자를 늘리는 것이 아니다. 학교가 평가를 바꾸도록 지원해야 한다.
교사가 새로운 평가를 설계할 시간을 확보하도록 행정업무를 줄여야 한다. AI를 활용한 수업 사례를 전시하는 데 그치지 말고 실패한 수업까지 공유하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교사가 AI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교사가 AI보다 더 많은 지식을 전달하려는 순간 경쟁은 이미 끝난다.
교사의 역할은 지식을 독점하는 데 있지 않다. 학생이 무엇을 질문해야 하는지 결정하도록 돕고 그 질문의 수준을 높이는 데 있다.
교장은 학교의 변화를 승인하는 사람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평가와 수업의 변화를 보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교육감 역시 선언만으로는 부족하다.
‘AI 미래교육’, ‘디지털 전환’, ‘미래인재’라는 이름의 계획서를 하나 더 만드는 순간 교육은 달라지지 않는다.
교사에게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는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학생에게 무엇을 새롭게 질문하게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AI 시대에는 학생의 답을 대신 만들어주는 기술이 넘쳐난다. 그래서 학교가 학생에게 가르쳐야 할 가장 중요한 능력은 답을 만드는 능력이 아니다.
답을 의심하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질문을 만드는 능력이다.
교육감은 예산으로 말해야 한다.
교장은 학교 운영으로 말해야 한다.
교사는 수업과 평가로 말해야 한다.
세 주체가 모두 바뀌지 않으면 AI 교육은 결국 새로운 기기를 기존 교육에 얹는 수준에서 끝난다.
AI는 학교에 허락을 구하지 않는다.
학생의 책상 위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다. 이제 남은 질문은 하나다.
AI가 학생 대신 답을 만드는 동안 학교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그 답을 아직도 ‘더 많은 지식’이라고 생각한다면 교육은 이미 시대보다 뒤처진 것이다.
AI가 답을 만드는 시대에 학교가 지켜야 할 마지막 영역은 인간의 판단이다. 그리고 판단은 좋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