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대 위에서 관객 한 분에게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네받는다. 구김 없이 빳빳한 지폐를 반으로 접은 뒤, 뾰족하게 깎인 나무 연필 한 자루를 지폐 한가운데에 가져다 댄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힘을 주어 연필로 지폐를 꾹 누른다. '푸석' 하는 섬뜩한 마찰음과 함께 연필 끝이 지폐의 심장을 뚫고 반대편으로 불쑥 튀어나온다.
연필이 지폐를 완전히 관통해 꽂혀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관객석에서는 "어떡해!" 하는 탄성과 함께 안타까운 숨소리가 번져 나온다. 피땀 흘려 번 소중한 돈에 돌이킬 수 없는 구멍이 뻥 뚫려버렸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연필을 천천히 뽑아내고 반으로 접혔던 지폐를 활짝 펼치는 순간, 관객들의 눈은 휘둥그레진다. 놀랍게도 지폐에는 찢긴 자국은커녕 흠집 하나 남아있지 않다.
사람들은 완벽하게 복원된 지폐를 확인하며 비로소 안도의 한숨과 함께 큰 박수를 보낸다. 무대 위에서 이 연출을 마치고 매끄러운 지폐의 촉감을 만지작거릴 때마다, 나는 우리네 인생에서 불쑥 찾아오는 수많은 '관통의 순간들'을 깊이 떠올리게 된다.
우리는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다가도 전혀 예상치 못한 시련과 맞닥뜨린다. 갑작스러운 건강의 악화, 믿었던 관계의 균열, 일터와 사업에서 닥쳐오는 거센 풍파는 마치 날카로운 연필처럼 내 삶의 한복판을 사정없이 뚫고 들어온다. 그럴 때면 우리는 엄청난 충격과 고통에 휩싸이며, "내 인생에 회복할 수 없는 구멍이 뚫려버렸다", "이제 나는 완전히 망가졌다"는 깊은 절망감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날카로운 연필이 지폐를 뚫고 지나갔음에도 상처가 남지 않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지폐가 연필의 날카로움과 정면으로 부딪쳐 부러뜨리려 하지 않고, 종이의 섬유질이 연필의 궤적을 따라 부드럽게 길을 터주었기 때문이다. 시련을 억지로 밀어내거나 부러뜨리려 하지 않고, 그 고통의 시간을 유연하게 '통과'시켜 낸 것이다.
인생의 위기를 대하는 지혜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살다 보면 내 힘으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사건과 고난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때 시련과 억지로 맞서 싸우며 스스로를 갉아먹기보다는, "이 또한 내 삶을 스쳐 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이겠구나"라며 마음을 유연하게 열어둘 필요가 있다. 고통에 정면으로 부딪쳐 부서지기보다, 그 시련이 내 삶을 지나가도록 묵묵히 버텨내는 내면의 유연함이 우리를 지켜준다.
물론 날카로운 연필이 지나가는 순간은 아프고 두렵다. 하지만 그 고통을 유연하게 통과해 낸 사람은 이전보다 훨씬 더 깊고 단단한 결을 지니게 된다.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칠 때 곧고 뻣뻣한 나무는 쉽게 부러지지만, 바람의 방향대로 몸을 낮추고 흔들리는 갈대는 끝내 살아남는 법이다.
상처 없는 인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상처를 전혀 받지 않고 온실 속에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리한 고난이 삶을 찌르고 지나가더라도 본래의 나를 잃지 않고 다시 당당하게 일어서는 회복의 탄력성이다.
오늘 당신의 삶 한가운데에 날카로운 연필처럼 꽂혀 있는 시련은 무엇인가? 너무 깊은 구멍이 뚫려 다시는 일어설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에 떨고 있지는 않은가? 부디 지레 낙담하지 말자. 지금 당신을 찌르고 있는 그 아픔은 영원히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지나가는 중일 뿐이다. 고난이 지나간 자리를 묵묵히 통과해 냈을 때, 당신의 삶은 티끌 하나의 흠집도 없이 더욱 눈부신 가치로 펼쳐질 것이다.
[필자 소개] 이요한 | 인천광역시 시민교수이자 '마술로 소통하는 가치교육 전문가'로 활동하며 전국 학교, 기업, 지자체 및 공공기관 등에서 삶의 소중한 가치와 희망을 전하고 있다. 출판사 대표 및 인터넷 신문사 발행인으로서, 강연과 글을 통해 세상을 따뜻하고 환하게 밝히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기록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