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비움과 성숙의 기도

 

                                                                                                                                                                목감천/ 이은택 時論 
 

바람의 결이 달라지는 계절이 오면 마음 한 구석에 작고 서늘한 바람길이 생긴다. 

 

유난히 드높아진 하늘 아래에서 나뭇잎들이 하나둘 제 색을 바꾸고 바닥으로 떨어질 때, 사람은 이상하게도 무언가를 더 얻기보다 고개를 숙이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이라 말하지만, 정작 우리가 눈으로 목도하는 것은 화려했던 것들의 쓸쓸한 퇴장이다. 그렇기에 가을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채우려 달려오던 삶을 잠시 멈추고, 조용히 마음을 모으는 기도의 계절일지도 모른다.

 

김현승 시인은 가을이 오면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영혼을 가꾸게 하소서"라고 읊조렸다. 

짙은 초록으로 숲을 이루던 여름의 무성함은 영원할 것 같았지만, 시간의 흐름 앞에서 결국 스스로를 내려놓는다. 나무는 겨울이라는 혹독한 계절을 살아내기 위해 가장 아름답게 물든 잎마저 주저 없이 털어낸다. 비워내지 않고서는 추위를 견딜 수 없음을, 움켜쥐고만 있어서는 새봄의 순을 피워낼 수 없음을 자연은 온몸으로 증명한다. 그 자연의 순리 앞에서 인간의 욕망과 집착은 더없이 초라해진다.

 

가을의 기도는 소리 높여 무언가를 원하고 구하는 간구가 아니다. 오히려 곁에 둔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는 침묵이자, 겉치레의 잎사귀가 모두 떨어진 뒤에야 드러나는 삶의 기둥을 직시하는 일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부풀렸던 허영과 타인을 향했던 뾰족한 원망, 거창했던 포부를 조금씩 거두어들이는 시간. 서늘한 바람 속에서 홀로 서는 고독을 기꺼이 받아들일 때, 비로서 타인과 세상을 향한 진짜 조용한 사랑이 시작된다.

 

길가에 굴러다니는 바스락거리는 낙엽 하나에도 삶의 서사가 담겨 있다. 지나온 계절 동안 치열하게 햇살을 마시고 바람을 견뎌낸 흔적이다. 올가을에는 잠시 일상의 소음을 끄고 마음의 뜰을 쓸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거창한 문장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한 해 동안 애써온 스스로를 가만히 보듬고, 내 영혼에 붙어 있던 무거운 욕심들을 온전히 내려놓는 마음의 고백이면 충분하다.

 

비워진 마음 자리에 비로소 가을 하늘의 맑은 빛이 들어찬다. 비워냄으로써 더 깊어지는 영혼의 공간, 그것이 바로 가을이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침묵하고도 뜨거운 기도의 응답일 것이다.
 

작성 2026.09.11 10:10 수정 2026.09.11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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