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아야 할 자신의 현실

ipecnews 기자

작성 2020.02.03 16:24 수정 2020.02.03 16:24

 

이 동 용 (수필가/인문학자)

 

현실이 현실일까요? 현실이 현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현실을 어떻게 접하게 되는 것일까요? 현실이 돌처럼 물처럼 나무처럼 산처럼 바람처럼 그렇게 존재하는 것일까요? 현실이란 것이 우리와 상관없이 이미 존재하고 있고, 그것을 두고 우리는 현실이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런데 현실은 달라!’ 이런 말을 하거나 또 듣게 될 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때로는 현실은 현실이야!’라고 말을 할 때도 있지요. 현실은 경우에 따라서 우리의 희망이란 베일을 덮어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엉뚱한 것을 현실로 인식하고 살아왔다면 이제 무슨 일들이 벌어지게 될까요? 인식의 변화는 어떤 상황을 연출해낼까요? 믿고 살아왔던 모든 것이 거짓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요? 속고 살아왔던 지난 세월을 돌려 달라 반환 요구라도 할 것인가요? 인생은 선택의 결과물입니다. 가짜를 진짜로 여기고 살아온, 즉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온 자기 자신이 문제일 뿐입니다. 누가 자기 자신의 삶을 두고 장사를 한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현실에 대한 고민을 할 때마다 인식의 그물에서 떨림을 전해오는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페터 한트케의 관객모독이 그것입니다. 특히 한트케는 지난해 201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되면서 더욱 유명해졌습니다. 그는 이 작품 속에 현실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담아냈습니다. 인생은 지도와 같습니다. 현 위치가 어딘지 모르면 그 지도는 쓸모가 없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현실을 깨닫지 못하면 인생은 이유도 없이 힘들기만 합니다.

가끔 모욕감을 불러일으키는 오해가 생길 때도 있습니다. ‘나를 뭘로 보고!’ 하며 저항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꼭 욕을 먹어야 이런 감정이 드는 것도 아닙니다. 상대가 나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을 칠 때도 이런 감정이 듭니다. 사랑이 아니라 동정을 받을 때도 모욕감을 느낍니다. 상대도 사람인지라 그냥 속아줄 뿐인데, 그는 자기가 영리하거나 똑똑해서 상대를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훈을 줘야겠다!’ ‘깨닫게 해야겠다!’, ‘혼 좀 내줘야겠다!’ 뭐 이런 발칙한 생각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누가 누굴 가르치려 들면 상황이 묘하게 꼬이고 맙니다. 사람을 사귈 때도 친구를 구해야지 부하를 구하려 하면 안 됩니다. ‘친구가 되어주는 능력만을 미덕으로 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듣기 좋은 소리만 하는 사람을 친구로 두려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를 들어 니체는 친구를 만드는 능력이 더 낫다고 주장했습니다. 아무 상관없는 그런 사람에게 다가가 한 번 사귀어 보자!’고 말을 건넨 적이 있나요? 또 그 의도가 성공을 거둬 진정한 사랑을 해봤다면 친구를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스스로 잘 알 것입니다.

한 동안 우리 대한민국은 조직을 강조했습니다. 조직문화를 지향했고, 상명하복을 지상명령처럼 받들고 살았습니다. 그것이 한 나라의 문화가 되면, 국민은 그저 복종을 강요당하는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갑질할 수 있는 윗사람만 편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까라면 까라!’는 그런 일방적인 논리 속에서 삶 자체가 희롱을 당하게 됩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상황에서 모욕감을 느끼지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감각이 무뎌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현실은 변합니다. 그 변한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그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자기들의 논리가 진리라고 여기면서 주변 환경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장땡이라는 그런 생각으로 현실에 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현실은 깨달아야 할 대상입니다. 현실을 모르면 인생은 언제나 해코지만 하려 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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