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 삼국지로 본 “코로나19와 뒷문으로 들어온 이리”

ipecnews 기자

작성 2020.03.04 15:37 수정 2020.03.04 15:37

칼럼니스트 차정식

    

 

한국에서 코로나가 전국적으로 대확산되었다는 소식이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전해오면서 일찌감치 국경을 봉쇄한 중앙아시아의 소국 키르키즈스탄의 원천 방역이 한결 돋보인다.

이 나라는 진단 키트조차 불과 얼마 전에 도입했고 의료시설 또한 열악하지만 다행히 22일부터 이미 마나스 국제공항과 중국과의 접경 국경검문소를 완전히 차단하여 중국인의 입국을 막았기에 아직까지 확진자 0의 청정지역이다.

이 나라에서 그동안 한국은 대단히 높은 위상을 누려왔으나 지금은 사정이 급전직하하여 예전과는 판이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했다.

한국사람이 키르키즈스탄에 입국하면 14일간 강제 격리를 당해야했다.

말이 격리이지 난방도 되지 않는 곳에서 중국인과 뒤섞여 야전침대 하나와 빵 한 조각에 의지했다고 하니 거의 감금을 당하는 수모이었는데 다행히 대사관이 재빨리 나서서 겨우 중국인과 한국사람을 따로 구분했다고 한다. 그나마 이것도 잠시 225일부터는 아예 한국인의 입국이 금지되었다고 한다.

한국이 이런 지경까지 됐고 한국민이 이토록 푸대접을 받게 된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동안 한국 정부는 오로지 국내에서 코로나19 환자를 찾는데 몰두했고 또 코로나 가짜 뉴스를 색출하느라 온통 정신이 팔려 허송세월을 하다가 갑자기 대구 지역의 확산 사태를 만난 것이다.

정부가 국경을 차단하지 않아서 이처럼 방역에 완전히 실패했으나 지금까지도 책임자의 성의 있는 반성이나 사과는 고사하고 심지어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같은 이는 1차 발병원 중국은 언급조차 못하고 오히려 한국사람이 한국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옮겼다는 것만 강조하는 기막히고도 웃지 못할 현실이 되었다.

 

한국과 달리 키르키즈스탄은 거의 대부분의 값싼 생필품을 중국에 의지해왔으나 우선적으로 국경을 차단한 결과 현재까지 코로나19의 유입을 막는데 성공하고 있다.

미리 국경을 차단했기 때문에 한국처럼 힘들여 국내에서 환자를 찾을 일이 없었던 것이다. 이 나라처럼 국경 봉쇄를 통한 원천적 바이러스의 유입을 차단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역인데 여태껏 뒷문은 열어놓은 채 앞문에만 신경을 쓰다 지금의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삼국지에서는 말하고 있다.

 

전문거호(前門拒虎) 앞문에서 호랑이를 막으니

후호진랑(後戶進狼) 뒷문으로 이리가 들어온다

()은 두 짝 문을 말하고 호()는 한 짝 문을 말하는데 뒤쪽의 한 짝 문이 열린 줄도 모르고 눈앞에 보이는 두 짝 문으로 들어오는 호랑이에만 신경쓰다 몰래 뒷문으로 들어온 교활한 이리가 내부를 걷잡을 수 없이 혼란시킨다는 말이다.

한중 전투에서 조조군이 유비군에게 계속 밀리다 마침내 장합은 퇴각하던 1만 군사를 와구관에 결집시켜 굳게 지키고 있었다. 장합이 앞문에서 장비의 군사를 열심히 방어하고 있는 사이에 장비는 경기 500기를 선발하여 몰래 재동산(梓潼山)을 지나 회근천(檜釿川)을 따라가는 험한 산길을 멀리 돌아서 몰래 뒷문으로 들어와 와구관을 점령했다.

장합은 한국에서 확산된 코로나19처럼 뒷문에 신경을 쓰지 않고는 아무리 앞문을 막아도 와구관이 함락되는 것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와구관 전투에서 장비에게 전선이 한 번 뚫리자 조조군은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마침내 황충에게 가맹관을 잃고 천탕산의 하후덕과 정군산의 하후연까지 패배하면서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퇴각하니 한중은 유비의 차지가 되었다.

 

또 뒷문이 열려 실패한 사람이 바로 그 유명한 관우(관운장)이다.

관우가 형주를 떠나 위나라 땅으로 승승장구하며 북으로 진군하여 번성까지 갔을 때 수군사마 왕보가 관우에게 지금 양양을 점령하여 조조군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나 동오의 여몽이 육구에 주둔하여 항상 형주를 노리고 있으니 남쪽을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리하여 관우는 심양강 강변을 따라가면서 혹은 20리 혹은 30리 간격으로 높을 언덕을 골라 봉화대를 설치하여 각 봉화대마다 50명의 군사로 지키게 했다.

만약 동오군이 강을 건너면 밤에는 불을 밝히고 낮에는 연기를 피워 신호하면 자신이 번성의 군사를 이끌고 형주를 구원하기로 하고 마음놓고 양강을 건너 번성을 공격했던 것이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조선에는 676개소의 봉화대가 있었는데 부산 동래나 순천에서 봉화를 올리면 한양의 목멱산 봉화대에 12시간이면 전달된다고 했으니 아침에 올린 봉화는 초저녁에 목멱산에 도착하여 유사시를 제외하면 변경의 정보는 다음날 아침에 승정원을 통해 국왕에게 보고되었다고 한다.

봉화대는 인간 상호간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시각적인 효용으로 신속하게 전달되는 뛰어난 체계이기는 하지만 만약 중간에 위치한 봉화대 한 곳이 적에게 점령되면 전 시스템이 마비될 위험성이 있는 점조직 같은 연결망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왕보의 말대로 동오의 여몽이 수군 3만을 구록선 80여 척에 태워 선창에 숨긴 채 상인으로 분장한 백의를 입은 군사들에게 노를 젓게 하여 형주를 공격하러 심양강을 거슬러 올라왔다.

봉화대를 지키는 군사를 속이고 순식간에 동오군이 상륙할 중요한 거점의 봉화대에 주둔한 군사를 다 사로잡으니 그 많은 인력과 물자가 투입된 봉화시스템은 힘 한 번 쓰지 못하고 무력화되었다.

동오군이 장구대진(長驅大進)하여 형주를 공격하러 갔지만 봉화대를 믿고 있었던 형주의 수비병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으니 여몽은 봉화대에서 사로잡은 관우의 군사를 이용하여 손쉽게 형주를 기습 점령했던 것이다.

관우가 앞문을 지키는 사이에 동오군이 몰래 심양강으로 진군하여 어느 한 곳의 봉화대를 점령하자 그 다음의 봉화대는 점조직처럼 적군이 쳐들어오는 것도 모르는 시스템이었다. 경보체계가 무용지물이 되니 결국 관우는 뒷문으로 들어온 동오군에게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저 국내의 눈에 보이는 코로나 확진자만 찾는 것은 앞문의 호랑이를 막는 장합과 관우이고 대량 발병의 최초 전파자 중국인은 열린 뒷문으로 들어와 한국을 온통 혼란시키는 이리 같은 장비와 여몽의 군사이다.

이렇게 한국이 전문거호(前門拒虎)하다 속수무책으로 후호진랑(後戶進狼)에게 당했으면 방역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야 말할 것도 없고 지금쯤 누군가가 책임을 지겠다고 제대로 된 말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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